일본인이 ‘피해자 코스프레’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: 회피의 심리
1) “피해자”라는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순간
원폭, 공습, 패전 같은 비극을 겪은 개인은 분명 피해자다. 그 고통은 실제이고, 공감받아 마땅하다.
그런데도 어떤 일본인의 발언이 ‘피해자 코스프레’처럼 보이는 이유는, 피해를 말하는 방식이 ‘가해의 맥락’을 통째로 생략하거나 흐리기 때문이다.
피해를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, 그 피해가 면죄부처럼 기능하는 순간 사람들이 불쾌함을 느낀다.
2) 회피의 심리 ① 인지부조화: “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”
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“괜찮은 존재”로 믿고 싶어 한다.
그런데 “우리 집단이 침략, 학살, 인체실험 같은 큰 범죄를 저질렀다”는 정보는 정체성을 강하게 흔든다.
이때 마음은 본능적으로 회피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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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편한 정보는 “과장됐다”, “논쟁이다”로 처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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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예 대화를 피하거나 주제를 바꾸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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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이미 끝난 일”로 봉인하기
즉, 사실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감당하기 불편해서 회피하는 것이다.
3) 회피의 심리 ② 책임 회피: “내가 한 일이 아닌데 왜 내가?”
많이 나오는 말이 있다.
“그건 정부 문제야.”
“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.”
“내가 한 일이 아니잖아.”
여기엔 일리가 있다. 개인이 선대의 범죄를 법적 죄책감으로 떠안아야 하는 건 아니다.
하지만 이 말이 반복될수록 대화는 공허해진다. 왜냐하면 역사 문제에서 자주 요구되는 건 “개인의 처벌”이 아니라: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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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해의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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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관계 회복의 언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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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재가 과거의 결과 위에 서 있다는 시민적 책임 감각
이 층위를 통째로 회피하면, 상대는 “책임은 끊고 이익은 누리는” 느낌을 받게 된다.
4) 회피의 심리 ③ ‘피해 서사’의 편안함
피해 서사는 말하기 쉽다. 이유는 간단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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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정적으로 설득력이 강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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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덕적으로 “나쁜 사람”이 되지 않으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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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감을 얻기 쉽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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논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준다
특히 원폭 피해 같은 압도적인 사건은 “우리는 전쟁의 희생자”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.
그런데 이 서사가 가해의 맥락과 분리되면 “우리가 더 피해자다”라는 경쟁처럼 보이고, 결국 ‘피해자 코스프레’ 인상을 만든다.
5) 회피의 심리 ④ “말하면 손해”인 사회적 공기(분위기)
어떤 사회든 민감한 주제는 ‘말했을 때의 비용’이 존재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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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위기 깨는 사람 되기 싫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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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치 얘기로 번지는 걸 피하고 싶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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괜히 논쟁에 휘말리기 싫음
그래서 “모르쇠” 혹은 “정부 탓”으로 빠지는 게 개인 입장에선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.
문제는 그 안전한 선택이 피해국 사람에겐 무성의한 회피로 읽힌다는 점이다.
6) 피해자 코스프레처럼 보이는 ‘결정적 순간’
다음 순간에 불쾌감이 폭발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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피해를 말하면서 가해를 언급하지 않을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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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우리도 힘들었다”로 상쇄하려 할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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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임의 대화를 “정부 문제”로 던지고 개인은 빠질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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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나는 몰라”로 끝내며 관계 회복 의지가 보이지 않을 때
이때 피해는 ‘호소’가 아니라 ‘전략’처럼 보이게 된다.
7) 결론: 핵심은 “피해를 말하지 말라”가 아니라 “회피 없이 말하라”
정리하면,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건 원폭 피해 자체가 아니다.
피해를 말하는 방식이 가해의 맥락을 지우는 회피로 작동할 때 ‘피해자 코스프레’처럼 보인다.
진짜 성숙한 태도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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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원폭은 비극이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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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리고 일본은 아시아에서 큰 가해를 저질렀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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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 사실을 지우지 않고 같이 기억하겠다.”
피해를 말해도 된다. 다만 회피 없이, 균형 있게, 관계를 복구하려는 방향으로 말할 때 그 말은 더 설득력을 가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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